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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코인 잔혹사②] 거래량은 세계 2위, 규제는 세계 1위?⋯ 경쟁력 잃어가는 국내 거래소

[블록미디어 문예윤 기자] 한국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시장의 투자 열기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 수요에도 국내 디지털자산 사업자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공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규제 기조까지 다시 강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열기는 고공행진…제도는 제자리걸음
10일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랩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 개인 투자자의 디지털자산 거래량은 약 666억달러(약 97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2133억달러(약 311조원)를 기록한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 수준이다.
이처럼 시장 규모와 투자 수요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관련 제도는 여전히 공백 상태다. 국내에서는 2017년 이후 코인공개(ICO)가 사실상 금지된 상태다. 지난해 6월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에 함께 논의되던 토큰증권(STO) 제도화와 법인 투자자 단계적 허용 방안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 때문에 상당수 블록체인 기업들은 해외에 법인을 설립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위메이드(위믹스) △넷마블(마브렉스) △카카오게임즈(보라) △컴투스홀딩스(엑스플라) 등 주요 기업들은 싱가포르와 아부다비 등에 해외 재단을 설립했다.
국내 기업들조차 해외로 나가는 상황에서 해외 디지털자산 기업들의 국내 시장 진입은 더욱 어려운 구조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써클(Circle)은 지난달 방한 당시 한국 시장을 주요 시장으로 보고 있으나 국내 규제 추진 상황을 검토한 이후 구체적인 사업 진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홍콩·싱가포르·일본·아랍에미리트(UAE) 등 규제 체계를 마련한 국가에서는 현지 규정에 맞춰 사업체 등록과 라이선스 취득을 진행하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다시 칼 빼든 특금법 개정안
이처럼 국내 시장이 성장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최근 논의 중인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정안에는 1000만원 이상 거래 발생 시 금융당국 보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트래블룰 적용 범위 또한 100만원 미만 거래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해외와 비교해도 국내 기준은 상대적으로 엄격한 편이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트래블룰 기준 금액으로 1000달러(약 146만원) 또는 1000유로(약 172만원)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3000달러(약 439만원), 싱가포르는 1500싱가포르달러(약 173만원) 수준을 적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별도 트래블룰 기준 대신 개인지갑 고객확인(KYC) 기준으로 1000유로를 적용하고 있다.
또 개정안 시행 시 국내 사업자가 해외 거래소의 적격성까지 직접 판단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꼽힌다. 그러나 해외 사업자의 협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현실적인 대응이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사실상 모든 거래를 잠재적 범죄로 간주하는 수준의 과도한 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거래 심사 과정이 길어질 경우 가격 변동에 따른 투자자 피해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만 웃나…VASP은 “생존 위기”
문제는 이 같은 규제 강화가 투자자뿐 아니라 디지털자산 사업자들의 시장 진입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현재 규제가 기존 금융권 수준의 의심거래보고(STR) 체계에 가까운 방향으로 강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사업자들의 비용 부담도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를 위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예비인증 컨설팅 착수 비용만 약 500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구축과 인력 운영, 라이선스 유지 비용 등을 포함하면 연간 5억~6억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결국 현재 구조가 대형 거래소나 디지털자산 사업을 준비 중인 증권사·핀테크 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이미 금융 인프라와 자본력을 갖추고 있어 규제 대응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 성숙을 위해서는 사업자 유형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디지털자산기본법에는 이러한 산업 구조 다변화를 위해 △매매·교환 △중개 △보관 △지급이전 △일임 △자문 △집합운용 △대여 △매매대행업 등으로 사업자를 세분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제도는 대형 사업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소규모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며 “독립형 샌드박스나 스몰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해 혁신 실험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투자 수요와 산업 성장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면서 업계의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는 “개정안은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향후 방향성을 결정짓고 사업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개정사항 시행 일정에 대해 최소 6개월 이상의 유예 기간을 재검토해달라”고 건의했다.